기술사회연구회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이하 IT)의 발달은 인류의 역사를 질적으로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하고 있는가? 소위 정보혁명이라고 불리는 제반 현상들도 지난 수 백여 년 동안 계속 진행되고 있는 현상들의 ‘양적 확장’일 뿐이지 ‘질적 변화’는 결코 아니라는 반박성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IT의 발달에 의해 인류의 삶이 보다 더 편리하고 풍요로워졌다는 식의 대답은 이러한 질문이 제기한 지적 의구심을 해소하기에는 너무나도 옹색하게 들린다. 게다가 이러한 대답은 양(量)의 척도를 들이대서 혁명(革命)을 가늠하려는 자기모순마저 안고 있다.


물론 정보화시대라는 세기적 격변기를 사는 동시대인의 제한된 지력(知力)을 가지고 정보혁명이라는 거대한 태풍을 가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각자가 지닌 지적 선입견은 정보혁명의 규모와 성격, 더 나아가서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각기 상이한 해석을 내리게끔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정보혁명의 학술적 연구가 가장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향후 논의의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한 개념적 기초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본 연구회는 이러한 준거틀 마련작업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니라 바로 정보혁명의 역사적 기원과 이론적 의미를 살펴보는 작업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정보혁명에 대한 기존의 사회과학의 논의를 살펴보면, 그 역사적 기원과 이론적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유보한 채 사상누각의 논의를 벌이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기존의 논의들이 정보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그러한 전제 하에 피상적인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 디지털TV, 각종 정보가전과 같은 IT의 산물이 가져오는 현란함에 도취되어 이러한 변화들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출현하였으며 실제로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잊은 것은 아닐까?  정보혁명으로 인한 사회변화를 논하기에 앞서서 정보혁명이 딛고 서 있는 역사적 궤적과 이론적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향후 어떠한 관점에서 진행되든지 간에 그것이 학술적 연구를 지향한다면 당연히 거쳐야할 과정이지는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연구회는 주로 정치학(또는 행정학)과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들로 구성되었다. 사실 정치학과 언론정보학은 최근 사이버공간에서 발생하는 정치․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학문분야이다. 특히 지난 수년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싼 정치와 문화 현상들은 한국사회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하였다는 해석들이 난무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유사 이래 존재한 일이 없는 질적으로 상이한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는가?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인터넷과 관련하여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러한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의 변화는 어떠한 독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도대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기술혁명인가 정보혁명인가 지식혁명인가 사회혁명인가, 아니면 문화혁명인가? 학자들마다 각기 다른 문제에 초점을 두고 제시한 이러한 개념들을 어떻게 구별해서 이해하여야 하는가? 본 연구회 참여자들의 잠정적 결론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역사와 현실로부터 도출된 이론적 안목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회는 정보혁명에 대한 정치학적 언론정보학적 탐구 과정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소위 ‘클래식’을 매달 같이 읽고 토론을 벌이는 독회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클래식들은 정치학이나 언론정치학의 경계 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사, 과학사, 경제사, 문명문화사, 기술사회학, 과학사회학, 정보사회학, 지식사회학, 기술철학, 과학철학, 기술경제학, 커뮤니케이션사, 전쟁사, 제국사, 문명사, 과학혁명, 르네상스, 산업혁명, 군사혁명, 지적재산권의 역사, 표준화의 역사, 정보혁명의 미래사 등과 같이 학제적 시각에서 쓰인 다양한 분야의 저서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저서들이 다루는 시대적인 배경도 지금 우리가 정보혁명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견되기 훨씬 이전인(아니면 맹아 단계인) 근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서양의 역사와 이론만이 아닌 동양의 그것까지도 포괄할 것이다. 또한 이들 도서들이 채택한 이론적 시각도 기술결정론의 원조에서부터 사회구성론과 최근의 기술과 사회의 상호구성에 대한 좀 더 정교화된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선별될 것이다.


본 연구회 활동이 회원들과 학계의 관련 연구에 가져올 기대효과는 정보혁명의 정치학적․언론정보학적 개별연구들을 위한 ‘메타 연구(meta-research)'의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회의 활동은 회원 각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부연구들의 이론적 역사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며, 다소 피상적이고 유행적인 논의에 소진하는 학계의 일부 경향을 지양하는 의미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회는 1-2년 동안의 집중적인 독회 활동을 바탕으로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발견되는 정보혁명의 내용과 실체를 주제로 하여 연구서 또는 교과서를 집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